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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: 20년이 넘게 사귄 친구와 헤어지며.....
분류: 일반
이름: 딸부자
등록일: 2003-08-30 21:38
조회수: 241
오늘, 더 정확히는 새벽 6시를 기해 정든 친구와 이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.
그 친구와 만난게 82년 가을께였으니 20년이 더 되었군요.
우울하고 어두웠던 20대의 아픔들과 흥겨운 들썩임에 늘 함께 해 온 놈이지만, 이제는
조용히 작별을 고하려 합니다.
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그 친구의 이름은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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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" 술 " 입니다.
대충 계산을 해 보아도 한 달중 평균 20일은 넘게 마셨고, 마시면 소주 2병정도는 마셨으니 내 속에서 녹아난 소주가 10,000병은 넘은 것 같고.
맥주는 밖에서 마시는 것 빼고 집에서 사 놓고 마시는 게 한 달에 50병 정도니 이것도 엄청난 숫자이고.
족보에 끼지 못하는 기타의 막걸리, 보드카, 청하, 생맥주 등등은 도저히 헤아리지를 못하겠고.......
술에 얽힌 에피소드들도 이젠 추억으로 돌려야 될 것 같습니다.
83년 무더운 여름날, 씨름대회를 마치고 서둘러 간 호프집에서 1시간도 안되는 사이에 1000cc잔으로 30개를 비운 기록 - 제 친구들이 아직도 전설로 기록하고 있는.
84년, 추운 자취방 구석에서 잠이 오질 않아 간장을 안주로 깡소주를 마시던 튼튼 내장.
85년, 피엑스 방위병을 협박해 소주를 뺏아 고참들과 밤새워 마시고 하사관들과 맞짱뜨
다가 *라게 피터지던 일.
스무살을 갓 넘긴 어느 날, 글이 안쓰진다며 네 명이서 20병이 넘는 깡소주를 비우고
가포바다에 자살하러 들어갔다 정말 죽을 뻔 했던 일 - 그 중에 한명은 지금도 연극
에 미쳐 살고, 한명은 지방지 기자, 한 명은 다행히 등단해서 시를 쓰며 살고 있음.
94년, 내가 결혼할 신부에게 내건 조건,
"술에 대해서는 간섭마라, 그것만 지키면 결혼하자." - 이건 지금도 유효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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너무나 많은 사연들을 남겨준 "술"이란 놈을 이젠 정말 보내줄까 합니다.
잦은 기억상실로 이어지는 심각한 치매끼,
술이 들어가면 공연히 많아지는 쓸데없는 이야기들,
점점 약해짐을 느끼는 체력,
마실수록 더 멀어지는 책 읽는 시간,
혼자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이젠 미련없이 보내야할 때 인것 같습니다.
혹시라도 오프모임에 나가더라도 저한테 술 대신 음료수를 권해주세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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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중에, 아주 나중에 첫째 딸이 사위를 데리고 와 한 잔 올리며 허락을 청하게 되는 날, 서운함을 삭이며 한 잔 정도 기울일 생각입니다.
2024년 7월 2일 [화]
